주얼리 아티스트 파베르제를 향한 오마주
제임스 간(James Ganh)
2016년 가을 런던패션위크에서 어느 해골 장식품에 시선을 뺏긴 적이 있다. 반투명한 연분홍 빛 해골은 초록빛 스톤과 새하얀 진주, 밝은 색의 에나멜로 장식되어 마치 야생화를 흩뿌린 듯 매혹적이고 로맨틱했다.
디자이너가 누굴까 궁금해하던 찰나,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가 씩씩하게 명함을 건넸다. James Ganh(제임스 간), 낯선 이름이었지만 한동안 뇌리에 강하게 박힌 네 음절이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난 8월 말, 영국 주얼리 브랜드 파베르제(Faberge′)에서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공개했다. 처음으로 디자이너와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한 것인데, 첫 번째 주인공이 바로 그 ‘해골 장식품’의 제임스 간이었다.
중국 광저우에서 태어난 제임스는 세 살 무렵부터 미술학원에 등록할 정도로 그림 그리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막연히 예술가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던 중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에서 주얼리를 전공하면서 본인에게서 매우 실험적인 역량을 발견했다.
최고의 장인정신과 창의력으로 제정 러시아를 상징하는 주얼리 아티스트 피터 칼 파베르제(Peter Carl Faberge)를 롤모델로 삼은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가 졸업 후 택한 첫 직장 역시 파베르제였다. 1882년 설립된 파베르제 하우스는 주얼리뿐 아니라 정교하고 예술성 높은 아트 오브제로 유명하다.
특히 차르 일가에게 만들어준 호화로운 부활절 달걀 시리즈로 그 명성은 최고조에 달했다.
오랜 시간 상표권으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13년부터는 유색보석의 윤리적 채굴을 지향하는 광산회사 젬필즈(Gemfields)가 인수하면서 현대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재정립되었다.
그런데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제임스의 인생에 중요한 기회가 찾아왔다. 그가 디자인한 부활절 보석 달걀이 경영진의 눈에 띈 것이다. 모두들 평면적인 드로잉을 제출할 때 제임스 혼자 은으로 시제품을 제작해서 장식품의 메커니즘까지 선보였다. 물론 오리지널 달걀의 핵심 요소인 ‘깜짝’ 오브제도 잊지 않았다. 그가 오늘날 ‘주얼리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번 파베르제의 디자이너 콜라보레이션은 발군의 실력을 가진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기회를 부여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널리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
제임스 간이 개인 브랜드를 설립한 2014년 이후에도 꾸준히 그의 혁신적인 행보를 지켜본 파베르제는 마침내 그에게 꿈과 역량을 널리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다.
그렇게 탄생한 ‘파베르제 X 제임스 간’컬렉션은 행복한 여름날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밝은 유색 보석들의 조합으로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충동질한다. 탄자나이트, 아쿠아마린, 자수정, 투어멀린, 멀티 컬러 사파이어, 에메랄드, 백수정 등을 창조적으로 배치해 해사한 자연광 아래 다양한 빛으로 물든 한여름 러시아 전원(田園)의 풍경을 묘사했다.
물론 100년 전 파베르제가 그랬던 것처럼 기능성에도 신경을 썼다. 귀걸이는 목걸이나 브로치에 연결시켜 팔찌로 변신할 수 있고, 펜던트는 반지로 바꿔 착용할 수 있다.
파베르제의 낭만적이고 사랑스러운 작품은 늘 제임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오마주의 시간이 헛되지 않게 이번 협업으로 그의 창의성은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